3부.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 미래를 위한 정책 아이디어

New Design Studio
뉴디자인 스튜디오
14 min readSep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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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MMCA 다원예술 2022: 미술관-탄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한 참여형 정책 디자인 실험 ”시민과 함께 상상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을 지난 두 글에서 설명했다. 첫 번째로 전체 프로젝트의 구조, 관점, 접근 방식, 기획 의도를 다뤘고, 두 번째는 미래 사회와 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생생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기획한 디자인 재료(artifacts)들을 소개했다. 이제 프로젝트 경험을 공유하는 세번째 글로, 시민 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정책 아이디어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에 전달한 과정을 순서에 따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12번의 시민 참여 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정책 아이디어

8월 10일부터 10월 15일까지 12회에 걸쳐 진행된 워크숍에는 총 164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기후위기의 맥락에서 MMCA의 미래를 상상해보고, 이를 막기 위해 각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들과 비판적인 생각들을 공유했다. 시민들의 넓고 다양한, 경계없는 상상으로부터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련의 워크숍 결과물들, 즉 워크숍 중간에 진행된 토론 내용들과 참가자들의 편지, 그리고 워크숍 이후 작성된 노트 등을 데이터로 활용했다. 첫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워크숍 결과물로부터 624개의 관심사, 생각, 아이디어를 도출했고, 이를 정책 아이디어로 통합했다.

그림 1. 워크숍 별 활동 내용과 참여자를 표현한 도식
표 1. 일련의 워크숍을 통해 얻은 결과물

방대한 양의 데이터로부터 정책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우리는 온라인 협업 플랫폼(미로 miro.com)으로 의미 있는 문구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고, 이를 디지털 스티커 메모에 옮겨 붙이면서 내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각 노트의 내용들 간에 유사도와 연관성을 바탕으로 묶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친화도 기법* (affinity diagram)이라고 부르며, 대량의 정성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관찰된 현상, 인터뷰 결과 및 그 외 정보들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이 작업을 수행한다.

그림 2. 데이터 분류 과정 — 미가공 데이터로부터 의미있는 구절들을 골라내기
그림 3. 유사도에 따라 노트들을 그룹짓기

며칠간의 분석과 합성 끝에 총 104개의 정책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었다. 그 예로, 지열 에너지를 활용해 냉난방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포함하는 기술적인 해결책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해 MMCA를 방문한 관람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행동적인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었다. 더 나아가, 탄소 중립을 위한 정책을 개발할 때 공정성을 확보하고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많았다는 점이 중요했다. 예를 들어, 워크숍에 참여한 시민들은 예술 창작 시 특정 재료나 탄소 배출량에 대한 제한을 만들 때 예술가와 교육자들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두 번째. 정책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

우리는 100개가 넘는 정책 아이디어들을 미술관 의사결정권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단순히 ‘시민 참여 워크숍을 통해 도출된 정책 아이디어 목록을 제공하는 것’은, 워크숍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결정권자들이 시민들이 만든 아이디어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실제 정책의 형태와 바로 연결되지 않아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정책 아이디어를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제안하는 데에 있어 시민(특히 어린이)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가 분명했으며, 이러한 시민의 목소리가 손상되는 부분 없이 주요공공기관의 지속 가능한 전환에 연결되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 즉 내용을 불렛 포인트로 정리해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의 정성적인 특성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목소리를 낸 시민들로부터 얻은 정당성이 손실될 수 있었다.

우리는 영국 내각 산하 정책 연구소인 UK Policy Lab에서 개발한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 (Government as a System toolkit)’이 적절하고 유용한 전달 방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영국 폴리시랩은 2014년부터 영국 정부의 정책 혁신 노력에 앞장서 왔으며, 인간 중심/디자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툴킷은 정책 연구소가 수행한 약 50개의 프로젝트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하며, 변화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혁신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림 4.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 (한글 번역: NDS)

이 툴킷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취할 수 있는 56가지 조치를 제안하고 이를 두 개의 축으로 분류한다. 세로축은 정부의 전통적인 역할, 즉 입법과 규제(아래)와 같은 내용부터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는 소프트 파워(위)까지 나타낸다. 가로축은 정책 결정의 단계를 초기 단계의 필수적인 참여와 개발(왼쪽)부터 정책 발전 단계의 자원 활용 및 조정(오른쪽)까지 나타낸다.

시민 워크숍에서 나온 정책 아이디어를 툴킷에 매핑하는 것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는데, 각 정책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도구를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우리의 아이디어와 정당성을 있는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미술관 의사결정권자의 언어로 번역하고 정책의 영역 내에서 맥락화할 수 있었다.

이 툴킷은 원래 영국 정부의 부서를 위해 설계되었지만, 한국의 공공미술관에서도 유효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보고 MMCA 직원들과의 소통 도구로 이 툴킷을 이용하면서 한국 미술계와 정부 관료조직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다.

한국어 버전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 다운로드 : PDF

세 번째. 정책 아이디어를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기 : 시간과 실행 난이도를 기반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에 매핑하면서, 우리는 곧 100개의 정책 아이디어를 하나의 툴킷에 배치하는 것이 보는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시민 참여자들의 인사이트를 검토하고 매트릭스에 정리한 후, 시급성과 시간적 특성에 따라 그룹화했다. 세 가지의 구체적인 범주로 구분했는데, (A) MMCA가 이미 시행 중이거나 시행한 것, (B) MMCA가 가까운 시일 내에 고려하거나 실행해야 할 것, (C) 복잡하거나 상당한 투자가 필요해 장기적인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더 단순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A. MMCA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

B. MMCA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해야 할 것

C. 장기적으로 MMCA가 고려해야 할 사항

(A) MMCA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

MMCA는 이미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MMCA 서울관은 부분적으로 지열과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여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4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자문단이 존재한다. 지난 4월에는 자문단을 통해 미술관의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에 대해 활발히 논의했다. 또한 <MMCA 다원예술:미술관-탄소-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성용희 학예사와 팀원들은 탄소 배출의 스코프를 고려하여 미술관 운영에 따른 연간 탄소 배출량을 추정했다. 이는 MMCA와 주요 관람객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미술관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었다.

그림 5. (A) MMCA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
그림 6. (A) MMCA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의 클러스터 중 일부분

(B) MMCA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해야 할 것들

두 번째 카테고리에서는 MMCA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가까운 미래에 실행해야 할 정책 아이디어들을 모았다.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 중에서도, 당장 실행해야 할 아이디어들을 대내외 여건과 현재의 사회-기술적 상황을 고려해 따로 분류하여 이 카테고리에 넣었다. 그 중 하나로 MMCA 서울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노후화된 시설을 유지보수하고 개선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아이디어가 꼽혔다. 단열을 위해 유리판 사이에 끼어 있던 불활성 가스가 대부분 사라졌고, 노후화된 태양광 패널의 효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대중들에게 교육적 측면으로 접근하고, 지속가능한 미술관 운영에 대한 축적된 지식을 전파하는 MMCA의 역할도 발전해야 할 부분으로 꼽혔다. 또한 MMCA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운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림 7. (B) MMCA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해야 할 것
그림 8. (B) MMCA가 가까운 미래에 실현해야 할 것의 클러스터 중 일부분

(C) 장기적으로 MMCA가 고려해야 할 사항

마지막은 MMCA 단독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복합적 성격의 정책 아이디어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규모가 큰 MMCA 미술관을 축소해 전시관을 한두 개만 갖추는 동시에 전국적으로 소규모 미술관의 숫자를 늘리는 등 다소 무리한 상상이 포함된다. 이 아이디어는 MMCA의 탄소 배출량의 대부분이 실제로 미술관의 물리적 위치와 관람객이 전시장에 도착하기 위해 운전하는 자동차의 빈번한 사용에서 나온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급진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사람들이 전시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 전시회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또한 참가자들은 워크숍 동안 탄소 크레딧을 사용 혹은 기부하여 전시회를 지원하거나 볼 수 있는 방법을 상상했다. 다른 아이디어에는 에너지와 폐기물이 없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보다 지속 가능한 건물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포함되었다.

그림 9. (C) 장기적으로 MMCA가 고려해야할 사항
그림 10. (C) 장기적으로 MMCA가 고려해야할 사항의 클러스터 중 일부분
그림 11. 준비한 툴킷을 MMCA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소개하는 모습

위의 결과는 2022년 11월 23일 MMCA 관장과 전시팀 직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회의 참가자들에게 포스트잇을 옮기고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도록 요청했다. 정책 인사이트가 담긴 툴킷은 정책의 구현 난이도 및 시급성에 따라, 이미 진행 중인 아이디어부터 복잡성으로 인해 추가 이해 관계자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아이디어까지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전반적으로 관장과 미술관 직원들은 모든 인사이트를 한 눈에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각 아이디어가 적절한 정책 도구 및 단계에 매핑되어 있다는 점에 만족했으며, 향후 단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작업에 대한 통찰을 논의했다. 이 순간은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였고 우리는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약속한대로 변화를 향한 시민의 목소리를 기관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전달하게 되어 기뻤다.

맺으며

“시민과 함께 상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과 함께한 9개월 간의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 시간 동안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문제가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시민과 이해관계자를 연결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되어 가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넘어서, 디자인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었다. 또한, NDS의 디자이너들은 MMCA를 대변하여, 변화를 위한 전략 개발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재 및 바람직한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실천적 논의에 기여할 수 있었고 이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시도이자 배움이었다.

기존의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접근 방식으로 미술관의 탄소 중립 정책을 디자인하기 위해 서로 다른 맥락 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요구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끌어냈다. 우리는 어린이를 시작으로 청소년, 성인으로 이어지는 릴레이로 구성된 일련의 워크숍들과, 그에 적합한 재료와 도구들을 디자인함으로써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민주적인 참여를 디자인했다. 그 과정 속에는 참가자들이 기후위기가 도래한 미래 속 자신과 환경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전략도 포함되었다. 이처럼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세심한 접근 방식은, 시민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기후 변화 문제를 이해하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왔다. 참가자들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MMCA에 필요한 변화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며, 이후 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정책 아이디어로 도출하고자 했다. 정책 아이디어 전달 역시 또 다른 전략을 세워, 의사결정권자의 언어로 효과적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으로서의 정부 툴킷’에 배치했다. 이것은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일 뿐만 아니라, MMCA의 주요 인사들 간에 즉시 달성해야 할 사항을 논의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부분은 프로젝트의 결과를 MMCA 관장에게 전달하는 자체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작은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부서장을 포함하여 미술관의 광범위한 이해 관계자 그룹과 함께 실질적인 실행 계획을 의논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를 희망했고, 우리의 워크숍 참가자 모두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관장을 비롯한 다수의 참석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당초 의도와 기대에 비해 참여의 폭과 논의의 깊이가 부족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 진행되는 유사 프로젝트에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파트너 조직의 핵심 인력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여기까지, 그동안 진행했던 <시민과 함께 상상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프로젝트의 회고록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유사한 난관에 도전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조직 관행을 위한 정책 변화에 기여하도록 영감을 주기를 바라며 세 개의 게시물을 만들었다. 혹시 이미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진심어린 응원의 마음을 담아 당신의 행운을 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관-탄소-프로젝트” 및 우리를 포함한 15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여기에 방문하세요.

우리와 함께 일하거나 새로운 정책 실험을 시도하고 싶은 분은 NewDesignStudio에 연락주세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보고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퓨처링(futuring) 이외에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인지 알아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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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곽병국, 한민주, 이승호
번역 : 류성원, 김수정, 한민주
검수 : 이승호

References

*친화도 기법 (affinity diagram): KJ 방법으로도 알려져있다. 가와키타 지로가 혼합된 정성 데이터 분석을 위한 초기 방법으로 개발하였고, 이후 Beyer와 Holtzblatt가 이를 디자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였다(Scupin, 1997; Beyer & Holtzblatt, 1997).

  1. Scupin, R. (1997) The KJ method: A technique for analyzing data derived from Japanese ethnology. Human Organization.
  2. Beyer, H. & Holtzblatt, K. (1997) Contextual Design: A Customer-Centered Approach to Systems Designs. Morgan Kaufmann,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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