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국립현대미술관의 탄소중립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재료들

New Design Studio
뉴디자인 스튜디오
12 min readSep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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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미래 기후 위기 속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을 상상하게 하여 오늘날 MMCA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 한 전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앞서 우리는 평상시라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 안에서 활발한 의견이 오갈 수 있도록 일련의 워크숍과 다양한 재료들을 디자인했다.

2001년 디자인 이슈즈(Design Issues) 논문에서 헤스켓(Heskett)은 스스로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 이라고 하며 “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때이다.” 라고 했다 (Heskett, 2001). 이 문장을 분해해 MMCA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겠다.

(a)디자인이란 디자이너가 (b)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c)디자인(d)디자인하는 것이다.

첫 번째 (a)디자인은 명사다. 실무 혹은 전문 분야로서의 디자인이다. 두 번째 (b)디자인은 헤스켓의 글(Ibid.)의 맥락에서 “완제품”이다. 우리의 경우, 이것은 MMCA의 탄소중립적인 미래가 될 것이다. 세 번째 (c)디자인은 중간 인공물(intermediary artifacts)과 관련된 명사다. 스케치, 목업, 서비스 블루프린트, 사용자 여정 지도 등이 있다. 유형에 관계없이 디자인 과정에서 생산된 모든 것이 이 범주에 속한다. 마지막 (d)디자인는 동사다. “디자인하다”는 말처럼 어떤 것을 하는 행위이다. 이번 글에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디자인했는지 소개한다.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디자인 픽션과 시나리오

우리의 주요 목표는 명확했다. “시민이 참여”하여 “함께 상상”하는 것, 그 두 가지였다. 상상력은 우리의 희망을 꽃 피우게 하는 힘이 있다. 상상력은 변화를 위한 참신하고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한다. 미래에 대한 사변적 추측은 현재에 얽힌 제약과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과 구조를 이루는 근본적인 전제 중 일부를 반성하게 하며, 동시에 가능성과 모호함으로 채워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의 답을 잠시 상상해보자: 20년 후,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을 것인가? 당신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은가? 이 질문에 곧바로 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미래는 사회, 경제, 문화, 환경적으로 얽힌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여기, 미래 상상을 도와주는 세 개의 워크숍 재료들 — 동화책, 가상의 신문 그리고 네 개의 극단적인 미술관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참여자들을 미래로 초대하고,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안내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만든 워크숍 재료들이다. 그 중에서 동화책과 신문은 디자인 픽션(Design fiction) 접근법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디자인 픽션은 “의사 결정의 결과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가능성 있는 가까운 미래로부터 유형의, 연상적인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행위” 이다 (Bleecker et al., 2023). 그리고 네 가지 극단적인 미술관 시나리오는, 어린이들의 상상에 기반해 만들어졌는데, 이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 워크숍의 결과물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두 가지 의도를 갖고 디자인 되었다: 우선 어린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또 더욱 급진적이면서도 정당한 정책 아이디어를 위한 상향식 정책 결정 과정을 이끄는 것이다.

첫 번째 재료: 2081년, 수연의 이야기

어린이 워크숍을 위해 우리는 2081년의 가상의 인물, 수연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8살인 수연이는 가정용 로봇과 수다를 떨고, 아침으로 과일을 먹으며, 트램을 타고 도서관에 간다. 하지만 그녀는 기후위기로 인해 일상적인 어려움들을 겪게 된다. 극도로 더운 날씨 때문에 밖에서 축구를 할 수 없고, 엄마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딸기를 먹을 수 없고, 산불로 집을 잃은 소위 기후난민을 걱정한다.

그림 1. 어린이 워크숍에 사용된 동화책 일러스트 중 일부

이 이야기는 과학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발간한 기후 시나리오 보고서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우리의 상상을 더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일상적인 어려움부터 기후 난민과 동물 복지와 같은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래 어린이들이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어려움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아이들과 쉽고 빠르게 소통하기 위해, 시각 자료로 일러스트를 사용하고, 실시간 보이스오버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림 2. 동화책 활동의 진행 모습

어린 참여자들이 동화책을 들은 후 수연이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아이들이 그 맥락에서 주변 환경과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우리의 삶이 환경(environmet)과 사회적 변화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동화책 활동 이후,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현재의 MMCA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림 3. 어린이 워크숍에서 나온 편지를 읽고 있는 성인 참여자

그리고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현재의 어른들과 MMCA 직원들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한 예로 아이들은 미술관의 과도한 전기 사용이나 전시 리플렛을 대량으로 인쇄하는 낭비적인 관행들을 걱정했다. 동화책 활동을 포함한 워크숍 활동들을 통해 우리는 아이들이 미래를 상상하고 추측하는 방법과, 선호하는 미래와 선호하지 않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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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재료: 2061년 신문 기사

10대 이상의 참여자를 대상으로는 나이대에 적합한 재료로 다시 디자인하기 위해 미래의 신문 기사를 채택했다. 이것 또한 IPCC 기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했다. 비건 빅맥이 인기를 얻고,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꾸미는 문화가 유행한다는 일상적인 주제부터, 서울시와 테슬라의 글로벌 협업을 통한 에너지 전환, 북극 홍수가 야기하는 전세계적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용해 기후변화로 인한 다방면의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냈다. 미래의 기사는 참여자들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문제를 본능적으로 상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도화선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신문에는 끔찍한 공기질로 인해 허파에 인공필터를 삽입하는 수술에 대한 광고와, 인류세 시대에 미술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방문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논하는 미술 평론가의 사설도 실렸다.

그림 4. 2061년 미래 신문의 기사와 광고 중 일부
그림 5. 신문용지에 인쇄된 미래 기사를 읽고 있는 참여자들

우리는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신문 질감이 나는 갱지에 기사들을 인쇄한 후, 마치 누군가 오려 놓은 것처럼 대충 잘랐다. 참여자들에게 돌아가면서 기사 내용을 모두 읽고, 그리고나서 든 생각을 팀과 워크숍 전체에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 재미있기도 하고 다소 도발적이기도 한 미래 신문 기사들은 참여자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미래를 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왔고 심도 깊은 토론을 이끌어냈다. 일부 참여자들은 기후 트라우마 센터와 기후 변화로 인한 스포츠 게임의 변화와 같은 기사는 이미 지금 일어날 법한 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또, 참여자 중 한 명은 본인이 가르치는 초등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며 기사를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고 우리는 기꺼이 재료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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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재료. 2061년 MMCA의 네 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

청소년 이상의 참여자들에게는 미래의 미술관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네 가지 미래 미술관 콘셉트를 추가로 제공했다. 이전 게시글에서 언급한대로, 이 시나리오들은 워크숍에서 어린이들이 낸 의견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이 상상한 미래를 갖고 참여자 간 토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어린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주체성과 힘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내부 아이디어 워크숍을 통해 어린이 워크숍에서 사용된 활동지를 분석했다. 나온 아이디어 중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에너지 사용과 환경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2년마다 미술관 문을 닫는 것, 땀을 흘리더라도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는 에어컨을 끄는 것,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인쇄물을 없애고 관람객들이 필요할 때만 인쇄할 수 있는 흑백 프린터를 설치하는 것 등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몇 가지 디테일을 추가하여, 더 흥미롭고 그럴 듯한 2061년 MMCA의 시나리오로 재탄생시켰다. 예를 들어, 미술관의 문을 닫는 아이디어를 “탄소 배출량이 정해진 한계에 도달하면 비자발적으로 문을 닫는 미술관”으로 발전시키는 식이다.

그림 6. 네가지 극단적인 미술관 시나리오 일러스트. 왼쪽부터 완전히 디지털로 전환된 미술관, 100% 제로웨이스트 미술관, 비자발적으로 쉬어야 하는 미술관, 오직 시민이 선택한 전시만 여는 미술관

두 가지 고려사항을 중점에 두고 네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권력과 정당성이 흐르는 방향(하향식 혹은 상향식)이고, 두 번째는 기후 변화 대응의 두 축(완화 혹은 적응)이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 이러한 이분법적인 접근은 위험할 수 있지만, 우리의 의도는 각 시나리오를 극단적으로 만들어 논의를 비판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러한 네 가지 극단적인 (터무니없지만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청소년부터 46세 이상까지의 참여자 대상 워크숍에서 사용했다. 참여자들은 팀으로 모여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까다로운 토론을 진행하면서, 각 시나리오를 구체화했다.

그림 7. 팀으로 시나리오 구체화 활동을 진행 중인 참여자들

이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인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인한 100% 제로 웨이스트 미술관”에 대해 살펴보자:

“만약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미술관은 예술 작품의 생산, 운송, 전시를 포함한 전 과정에서 철저히 제로 웨이스트를 실행해야 한다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는 참여자들에게 토론의 포인트로 사용할 질문 목록도 함께 제공했다. 참여자들은 각 질문을 따라 답을 하거나, 주어진 시나리오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구체화했다.

  1. 미술관의 전시는 어떻게 달라질까?
  2. 미술관이 마주할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일까?
  3. 예술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일부 참여자는 이 시나리오를 새로운 예술 소재의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회로 이해했고, 일부는 예술 창작 활동에 관여하는 하향식 규제를 비판했다. 건축을 전공하는 한 대학생 참여자는 방문객이 요청하면 필요한 방에만 잠시 조명이 켜지는 시설을 제안했고, 미술사를 전공하는 참여자는 국제 교류가 약해지면서 새로운 민족주의 예술이 등장할 시대를 상상했다. 46세 이상의 참여자 중 한 명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유산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하면서, 작품 보존이 그 비용과 환경적 영향을 감내할 만큼 가치가 있는 활동인지 논의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와 이를 둘러싼 경계 없는 상상 속에서 파생된 심도있는 토론을 통해 우리는 시민들의 의견, 우려, 희망, 요구와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현재, 가까운 미래 그리고 먼 미래의 미술관 정책 아이디어 생성에 활용했다.

> 네 가지 시나리오와 토의 포인트 다운로드

맺으며

우리는 MMCA의 탄소중립 미래를 위한 상향식 정책 결정 과정을 견인하기 위해, 일련의 미래 워크숍과 시민 참여에 활용한 위와 같은 재료들을 디자인했다. 미술관의 의사 결정자들과 함께 하는 최종 정책 워크숍에서 충분한 정성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세 번째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 및 정책 디자인 스튜디오 및 연구소로서, 우리는 MMCA의 탄소중립 미래를 위한 실행 가능한 전략을 이끌어내는 워크숍 시리즈를 디자인하고, 동시에 예술적 경험을 창출하고 특정 정치적 시각을 전달하기 위한 명확한 의도를 더했다 (관련 내용은 이전 게시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소개한 디자인 재료들과 방법론이 몇몇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가 함께 직면한 고약한 문제(wicked problem)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에 도전하고 실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기를 원하는 팀, 스튜디오 및 기관들에게 영감을 주고자 프로젝트를 자세히 소개하며 경험을 공유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관-탄소-프로젝트” 및 우리를 포함한 15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여기에 방문하세요.

우리와 함께 일하거나 새로운 정책 실험을 시도하고 싶은 분은 NewDesignStudio에 연락하세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보고 사회에 건강한 영향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탄소중립과 퓨처링(futuring) 이외에도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인지 알아보려면
스디오웹사이트를 방문하세요: www.newdesign.studio

작성 : 한민주, 이승호
번역 : 윤가희, 유태안, 한민주, 김수정, 류성원
검수: 이승호

References

  1. Heskett, J. (2001). Past, present, and future in design for industry. Design issues, 17(1), 18–26.
  2. Bleecker, J., Foster N., Girardin F., Nova N., Frey C., Pittman P. (2023) The Manual of Design Fiction. Near Future Labora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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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esign Studio is a design research practice and laboratory for public service and policy at Department of Design in the 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