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잘 보여요. 내일은 모르죠 아무도.
NDS weeknote 성원의 첫번째 이야기,
*이 글은 시리즈로 작성되었습니다. 정보접근성 시리즈는 총 5편으로 구성되며 해당글은 첫 번째 글입니다. 더 많은 시리즈가 궁금하시다면 성원의 브런치에서 살펴보세요.
멍 때리는 것의 즐거움.
나는 집 앞 5분거리에 있는 must coffee lab 카페를 매우 좋아한다. 커피에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향과 풍미를 즐기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앉더라도 은은하게 들어오는 주황 불빛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과하지 않은 녹색 식물과 갈색의 가죽의자 사이로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균적으로 0.2초에 한장의 사진을 찍는 속도로 눈을 굴릴 수 있는 덕분에 카페에 앉아 멍때리는 것도 나에게는 영화를 보는만큼이나 즐겁다.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 ‘이해한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Fei-Fei Li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을 보며 이해하고 학습하며 살아간다. 그 중심에는 두개의 눈이 자리잡고 있다.
눈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본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아쉽게도 눈은 영원하지 않다. 딱딱한 머리뼈와 안와라고 불리는 눈구멍 속에서 단단한 근육으로 고정되어 안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물리적인 충격을 포함하여 근시, 원시, 난시, 노안, 녹내장 등 다양한 이름의 증상과 질환으로 인간의 눈은 평생 위협을 받는다. 시력을 잃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의의로 노화와 같은 일반적인 상황으로도 시신경이 손상되어 시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NDS와 한국행정연구원이 함께한 ‘교통약자 프로젝트’에서 만난 50대 시각장애인 A씨는 30대까지 시력에 문제가 없었지만 40대가 되면서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졌다고 한다. 그리곤 언젠가부터 외출이 힘들어지면서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등록된 시각장애인만 25만명(2019 보건복지부 통계), 전세계 인구의 3.3%(2019 WHO 통계)라는 적지않은 수가 시각장애를 겪고 있다. 그 외로도 시력이 점차 낮아져 안경이나 렌즈에 의존하는 우리의 삶만 보아도 넓은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를 겪고 있거나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 각자 정도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회복이라는 해결책 없이 눈은 지금도 조금씩 손상되고 있으며 언제까지나 동일한 시력을 유지할 수 없다. 오늘은 두 눈으로 Netflix를 보며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지만, 내일이면 흐릿한 화면 또는 깜깜한 화면을 마주할 수 있다. 꼭 눈만 그렇지는 않다. 단지 삶에서 눈이 다른 감각보다 조금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사용자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다.
눈을 이야기하느라 소개가 늦었지만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신체기능이 준수한 공대 석사생이다. 디자인은 제품을 다루는 제품디자인부터 패션, 모빌리티, 건축, 서비스 등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그중 서비스를 다루는 디자이너는 Netflix와 같은 서비스가 어떤 기능을 제공하고 어떻게 화면 속에서 보여야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자,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사용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패턴을 찾아 더 나은 사용성을 제공하는 창작자이다. 디자이너는 매일 사용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규정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우리는 아쉽게도 사용자의 일부만 보는 경향이 있다. 보통 디자이너가 서비스에서 규정하는 사용자는 모든 신체기능이 준수하다는 가정을 두고 시작하게 된다. 쉽게 말해 특정 서비스의 사용자를 20대 남성으로 규정한다면 자연스럽게 평범한 20대의 남성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화면을 볼 수 있는, 들을 수 있는, 두손으로 터치할 수 있는 심지어 외부의 소음이나 방해가 전혀 없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용자를 생각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작은 오류는 결과적으로 20대 남성 중 일부를 서비스에서 제외시켜 버리게 될 수도 있다. 특히 시각정보를 활용하는 디지털 서비스라면 시각장애를 겪는 사용자를 철저히 배제시킨다. 만약 해당 서비스가 삶에서 매우 밀접한 영향을 준다면 배제된 사용자는 사회에서 더 소외된다. 배달어플로 야식을 시켜먹지 못하는 불행을 겪을 수 있으며, 버스시간표를 제공받지 못해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불편함을 겪을 수 있다.
기획자이자 디자이너가 시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이해한다면, 사용자를 규정할 때 지금보다 더 촘촘히 봐야할 필요가 있다. 눈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보지 못하는 사용자들도 함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설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설계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일시적으로 시각장애를 겪는 사용자의 상황까지도 고려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서비스가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 다만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모두가 누려야하는 서비스 만큼은 적절한 대상과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모두가 누려야하는 서비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시각장애를 가진다면 해당 서비스로부터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아보고 이해해보고자 한다. 그 끝에는 아마 좋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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